저녁나절 심심하던 차에 마트구경이나 가기로 했다.
엄마를 꼬셔내 같이 가고자 했지만, 귀찮다고 패스하심!
쳇~ 뭐 결국 혼자 주섬주섬 잠바를 챙겨입고 나갔더니, 세상에 마트앞 길이 어찌나 막혀있던지!!!
주차할 자리를 찾으며 뱅글뱅글 주차장을 돌며 다시한번 절감한다. 사랑은주차는 타이밍이었지.
대학입시 눈치작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머리와 눈을 비상하게 굴리다 겨우 주차를 하고 마트안으로 입성했다.
가족을 이룬 사람들 혹은솔로가 아닌 사람들이라면 크리스마스 오후 내지는 저녁엔 모름지기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집이나 분위기 좋은곳에서 사랑의 꽃 피우는 즐거운시간을 보내야 되는 법 아닌가?!
요따위마트정도는 나같이 갈데없고 할거없는 솔로에게 기꺼이 양보해야하는 법 아닌가?!
왜 마트로 쳐기어오고들 난리냐?!?!?!
집을 나서기 전 엄마는 콩나물과 두부를 사오라는 지령을 내리셨다.
이 생에 콩나물과 두부만큼 심부름스러운 아이템이 또 있을까.
어릴적부터 익숙했던 것들이어선지 잠시 동심에 젖은 나는 어느새 발빠르게 완구코너로 향하고 있었다.
건담코너에서 엄마아빠에게 내팽개쳐진것으로 사려되는 초딩 셋과 나란히 진열대 앞에서서 건담 상자를 만지작거린다.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건담을 하나 갖고싶다는 열망이 두께 이십센티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여기서 난 득의양양하게 분홍빛 이지스 건담 상자를사뿐히 카트 안에 넣는다.
초딩 셋이나를 열라 부럽게 쳐다본다.그러면 안됐겠지만, 나도 모르게 초딩들을 앞에 세워두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누나가 이거 같이 만들자는 남자는 없어도, 이런것쯤 열박스라도 살 돈은 있다!!!
(내 인생도 슬슬 막장나나보다)
완구 코너를 벗어나니 음반코너로 이어진다.
집에 축쳐져 누워계신 엄마님께서 며칠전부터 뽕짝이 자꾸 댕기신다고 하신말씀이 생각나 트로트 메들리 cd를 하나 집어들었다.
마트를 돌아다니는데 왠지 사람들이 자꾸 내 카트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네 지금 막장 솔로녀가 건담박스를 넣고 돌아다니는게 우습다는거니?
아님 나한테 건담모형 만들만큼 큰 초딩자식이 있다고 생각하는거니?
수많은 인파에 괜히 기가 죽어 콩나물과 두부와 뽕짝cd로 건담박스를 살짝 덮어본다.역시 추하다
오늘같은 날은 아무리 의연해지려해도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드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흥분에 차서 거실에 박스를 해체시켜놓았다.

귀찮으니 집에서 시켜먹자고 했더니 두번 묻지도 않으시고 따뜻한피자를 드셔야 겠다며 날 냅두고 나가신다.
홀로 집에 남겨진 나는 두시간을 꼬박 집중해 이지스 건담을 완성해냈다!!

아! 이런 성취감은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본다.
종이 모형 만들기 놀이를 만들면서도 뿌듯한 기분은 많이 느껴봤지만 관절마다 움직여주는데다가 심지어 변신까지 가능한 놈을 만들어 낸 지금 이 기분에 비할바가 못된다.
크리스마스의 감동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이 건담을 들고 좋아서 껄껄대는 내모습을 보시곤 혀를 끌끌 차신다.
감동이 살짝 뒷걸음질쳤다.
그래도 아직 이렇게 글을 적을 만한 신이 남아있다.
실로 이브만큼 알찬 크리스마스 하루되겠다.
많이 고마워, 건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