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순풍산부인과

watchings | 2007/11/22 13:41 | conpanna


뭘해도 신나지 않았던 고3시절, 오로지이거 챙겨보는 재미 하나로 버텼다....는 표현은 과하다.
하지만 정말 난 이 시트콤에 제대로 꽂혔었다.
그때만해도 우리학교는야간자율학습을 제법 엄격하게 시행했는데, 이건 참으로 큰 딜레마이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간단한 검색하나로 공짜 혹은 염가, 불법 또는 합법적로 다시 보기 서비스를 즐기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명색이고3이라는 신분으로모냥빠지게예약녹화을해 구차하게 챙겨 보고싶지도않았다.오로지 본방을 봐야겠다는 똥고집을 피웠지 말이다. 그러고보니 요즘에와서야 일고있는 '닥치고본방사수'라는 운동이 이미 내겐 대세였던게다.

난 당시진심으로 공부를 싫어하는 부류였다. 쓰고보면 잘난척일까, 학교를 도시락먹는 재미로만 다녔음에도모의고사 점수는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에(아무래도 중학교 때 미리 받은 정석 과외발이었던 듯하다.) 부모님도 나의 빈둥거림에 약간의우려정도만 하셨다.게다가 그 당시 나와 연년생인 우리집블루칩 오라범이 서울유학 재수생모드였기 때문에 관심이나보다는 그쪽으로편향되기도 했었다.

어느날 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비장한 얼굴로 엄마에게 이젠 나도 본격적으로공부를 좀 해봐야겠다고 선포했다. 물론 운전중인 엄마는 내 비장한 얼굴따윈 눈치채지 못하셨을게다. 엄마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 어디 그 소리가 어제오늘 나불거리던 거냐며 퉁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이어갔다. 이번은 진심이다. 정말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 조건은 하나다. 제발 자율에서 날 빼달라. 사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겠다.자율학습 분위기가 어성성해서 집중이 안된다. 사실 내가 집중을 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온 집중력이 얼마나 거센지 얼마도 잘 않지 않나. 제발 빼달라. 공부해서 서울대 가겠다. 입에서 나오는 건 다 말이 되는 줄알고 시부렁시부렁댔다. 결국 몇일간 이어진 나의 회유와 협박으로 엄마는 반 속는 심정으로 나를 그 먹먹한 교실에서 빼내주었다.
단 엄마가 제시한 카드는, 니가 갈 독서실은 내가 정한다. 훗, 그쯤이야..그리하여 난 엄마친구가 운영하는 여성전용 독서실에 등록을 했다. 여성전용 아니라수녀원 입소라도 마다하지 않았을테다.

그렇게 난 합법적으로 그날그날생생한 순풍산부인과 본방을 독서실 휴게실에서 훈훈하게 시청할 수 있었다.불행히도 독서실에서의 나의 티비시청을 비롯한갖가지 기행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발각이 났다.엄마가 박아둔독서실 끄나플(엄마 친구 딸)을왜 내가먼저좀 더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했던걸까. 여러모로 내 인생에 태클걸어주는 엄마친구딸들 되시겠다.
하지만 어쩌랴.엄마는돌아오지 못할 강을 이미 나와 함께 건너와버렸다. 다시담임에게 나를돌려주기가 껄끄럽고 귀찮으셨는지다행히도 나를 독서실에 꽂아두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 갔고 훗날 간혹 순풍산부인과를 떠올리면,,,
다이어트 앞둔 전날 먹은 수입산쇠고기가 환상의 마블링을 가진 횡성 한우 안창살마냥 고소하고,
시험 전날에 참고서 팽개치고 읽는 신문사설이 너무재밌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식으로다가
그 시절에 봤기에 더 재밌었던게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작년 영상물 불법다운로드 사이트를 어슬렁 거리다 마침 순풍산부인과 스페셜이돌아 다니길래 본전도 장사라는 심정으로 저가다운로드를 받아서 다시 본 적이 있다.오호호!이건 원래 웃긴 거였잖아.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베스트는 강토엄마 권은아와 미달아빠 박영규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합심하여 내려오는 에피소드와 몽몽교 교주로 분했던 윤기원의 활약이 돋보이던에피소드.

생각하니까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