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약 먹는 걸 너무너무 싫어한다.
크면서 비위기 많이 강해져서 이젠 약을 먹다 삼키질 못하고 '욱'해버리는 상황이 더이상 발생하진 않지만,
난 몸에 아무리 좋다는 약이라도 삼키는 그 순간만큼은 사약 받는 폐비마냥 처참해진다.

물약<알약<<<<<가루약<한약<뭔지모르겠지만 허여멀건 약

내 기준으로순위를 매겨본 약먹기 난이도이다.

1. 물약은 대게 달달하고 먹기 좋게 만들어놓은 경우가 많아서 유쾌한 맛은 아니지만 소량일 경우엔 얼른 한 숟가락 삼켜버리고 물을 마셔 입을 헹궈낼 수 있어서넘기기 어렵지 않다.

2. 알약은 왠지 어렵다.지금은 세 알 정도는한번에 넘겨버릴 수 있지만 어렸을 땐 정말 한알 한알 삼키는 게 고역이었다.
처음엔 내 목구멍이 작을 거라고 의심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년전 대학원 종강파티 때 우발적으로참가했던 맥주빨리마시기 대회에서 여자부 1등을 차지한 뒤로 스스로 저런 의심을 해봤다는 자체에 대해서 부끄러운줄 알라고 나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목격자 k군은 그 당시 나는 분명 성대를 열고 목에 맥주를 쏟았부었노라고 제보했다.유독약을 못삼키는 이유는 내 식도 문지기들의 호불호가 너무도 분명해 알약은 고대로 혀에 남겨둔 채물만 꼴각꼴각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너무 보수적이다. 얘들아..그러면 못쓴다;;

3. 가루약이 알약 바로 다음 순위이긴 하지만 그 둘의각극만큼은 시베리아 벌판만큼 광활하다.물을 적당히 담은 숟가락 위에 가루약을 타먹는 방법이 없었더라면! 맨입에가루약을 털어넣고 물을 마시는 게 유일한 가루약 복용 방법이었더다면!! 난 죽을병 걸리지 않고서는 결연코 가루약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4. 한의원을 아끼는 이웃집마냥 찾으시는 엄마의 영향으로 본인의 건강이 과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자주 한약을 음복했다. 어렸을 때는한모금만약을 삼켜도'웩,웩'거리는 탓에 엄마한테 이욕저욕 다먹어가며 결국엔 뺨을 따라 흐르는 눈물과 함께 약을 삼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다욕먹지 않고 떳떳하게 살고자 울트라스피드바톰-업 기술을 득템하였다.입으로 숨을 내뱉으며재빨리 마신 뒤 과일이든 사탕이든 입에 하나 넣으면한약 한팩쯤 2초안에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내가 맥주마시기 대회에서 1등한 게 마냥 신기한 일도 아니구나) 입에 쓴 약이 싫다 싫어.

5. 그러고보니 한약보다 난이도 쎈 약을 얼마전 건강검진 때먹었다. 딱히 약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싶을정도로 애매모호한 군에 속할법한 반액체반고체의 흰색물질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포기하고 위 조영술로 대체하면서 반드시 마셔야하는 약이었는데 그 요상한 것들이 내 식도를 타고 위장기간을 통과하는 생중계를 보기위해 먹어야했던 모양이다. 종이컵에 흰색액체가 담겨져오는 순간'저거 플레인 요거트같군'이라는 아름다운 착각을 잠시했다. 허나컵을 받아들고 무게에흠씻 놀랐다. 종이컵 한잔인데우유 석잔정도 무게가 느껴져 그 묵직함이 이내 공포감이 되어 몰려왔다. 컵에 담긴 것들이 더이상 요거트같이 보이지 않았다.이건 완전 석고반죽같았다.니들 지금 내 위장에 공구리 치려는 거니?!?(공사판에서 일하는 오라비에게 배운 말)심리적 거부장벽이 너무도 드높았기 때문에 결국 난 두모금 마시고 헛구역질을 헤댔다. 맛이 쓴것도 아니고 오히려 달달했는데 그게 더 비위를 거슬리게 했던 모양이다.정말 다행스러운건 그 짧은 순간동안이성적인 판단으로 그것들을 내뱉지않고겨우 삼켰다는 사실이다. 허나 전~혀 연약하게 생기지도 않고 비위약하게 생기지도 않은 본인이까탈스러워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무안해서 검사실 안에서식은땀이 삐질삐질났다. 그 약은 정말 오만원 줄테니까 다시 마시라고 해도 안마실 것같다. 카드고지서 받는 날 아침에도 이런 자신감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

+ 방금 코가 꽉 막혀서 옆자리 언니한테 감기약 하나를 얻어먹다가갑자기 떠오른 거 하나!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늘 신기했는데. 그들은 알약을 늘 물없이 맨입에 삼켜버린다. 그래서 미쿡에서 무려 16년을 살다 온 e언니한테 물었다.
나: 언니. 언니도 알약 물없이 그냥 삼켜요?
언니: 아니, 물 마시는데
나: 어. 이상하다. 근데 왜 미국드라마 보면 걔네들은 물 안마시고 약만 먹을까요?
언니: 모르겠네.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