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특정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가일정 시공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인지하는 순간, 그것이상황이란 개념으로 정리되고,
내가 그 상황을 상황으로 받아드리는 순간,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어 압박을 느끼게 된다.
압박을 느끼게 된다면 그 상황은곧 내게 찾아온 위기.
내가 늘 방관만하는 입장이라면그들의 위기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그건 남의 일이지하곤 무신경하게 심드렁 제껴버린다.
하지만 가끔 그걸 나의 해익과 연관짓고 뭔가에 대해 정면으로 대처해보려 할때 난 위기를 감지하고 사위가 나를 향해 죄어오고 있다는 압박을 느낀다.
사실 압박과 위기의 시순을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영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근무시간 중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이런 시시콜콜한 자아비판적 글을 쓰게된 배경은 두가지이다.
굳이원초적인사유 하나를 덧붙이자면, 지금 딱히 해야 할일거리가 없다는 점.
1. 최근 나의 행적에 관한 정면 부딪치기로 인해 느끼는 심리적 갈등.
2. 요 며칠간 뻔질나게 드나든 싸이엔지 토론게시판을 열독하며 생긴 심리적 고충.
첫번째는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반성이다.
이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문제에 대해 정의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 생겨났기 때문에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아직도 난 스스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처하여 답을 찾아내려는데 소극적이고 겁에 질려있다.
보통은 1/3쯤 답을 찾았다 생각이 드는 시점에 남이나 나나 인간사 다 똑같지 하곤 피해버렸던 문제인데,
이건 내 자신에게도 비겁한 태도였고, 내가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지금 이렇게 괴롭게내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난 어려우면 언제나 버리고 놓아버리고 아물다 만 상처를 눈에 안보이게 숨겨버리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난 더 크게 곪아 터진상처를 두고난감하다.
나를 다 알지 못해 당장 답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이번만은 손놓지 않고 나를 찾아가고 싶다.
시간이 걸리고 또 걸리더라도, 또 다시 예전처럼 덮어버리고 싶더라도 눈감지 말자.
두번째는 싸이엔지 토론방에서 생겨난 딜레마.
정확히 말하면 세상만사에 관심이 쭉쭉 뻗어나가던 2004년-2005년 즈음하여
난 과학에 대한 동경을 무지막지하게 키워나갔다.
아마 지금은 그동경이 정점에 달해 있을 지도 모른다.
수년전부터 국가난제로 떠오른 이공계 위기 문제에 대해 내 일마냥 걱정되고 심란스러웠다.
사건의 본질은 잘 알지도 못했고, 그저 공중파 뉴스와 조중동이 내놓는 칼럼과 논설로 적당히 사건을 인지하며 고민을 키웠다.
그러다 싸이엔지 토론방을 드나들게 됐고, 다양한 시각을 배우게 되면서 뭔가 명쾌해지는가 싶다가 다시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정보를 접하는 건 정말 쉬운일이지만 그걸 고르고 취하는 일은 그리고 내 의견을 만드는 일은 심하게 어렵다.
내 나이먹을수록 이리 판단이 흐려지고 맞서는게 두려워지는 건 정말인지 옳지않다. 옳지않아!!
똘똘하고 당찼던 어린이 꼰빠냐가 그리워진다. 아아아...
사실 살면서 중간에 이렇게 한번씩 짚어내면 찾아오는 위기와 느껴지는 압박은 늘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한번 짚어낸 건 이것조차 두려워하고 피한다면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지금보다 더 많이 괴로워질까봐 미리 좀 건강해지고 싶어서이다.
탁하고 곪아진 일부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