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면허를 따고 어떤 차를 사야하나 집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 무조건 뽀대나는 새차를 사야된다며 줄기차게 주장하다가, 엄마의 뽀얀 새차 문한짝을 고기씹어먹듯 씹어먹혀버리곤 그날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아빠는 내가 새차를 산다고 생떼를 쓸때부터 뜯어말리셨다. 니가 새 차에 흠집이라도 나면 그 심정이 어떤지 아냐며, 마치 내 살에 스크레치가 나 나오는 피를 보며 눈물을 삼키는 기분이라고 표현하셨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걸까 당시에는 그 맘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엄마차를 해먹은 날 난 그보다 백배 더 괴로운 기분은 맛보았다.
차라리 내 살에 스크래치 나는 편이 낫지, 그건 꼭 셋방살이 꼬마가 주인집 도련님 엎어트려 다리라도 분질러트린 것같이 처참한 기분이었다. 일련의 事故와 思考를 거쳐 난 지금의 차 매깅이를 구입하였다.

2. 긴급출동서비스. 없었으면 어쩔뻔 했니?
근데 이 긴급출동서비스도 무료이용한도는 고작 5회밖에 안되더라. 헌데 난 벌써 다 써먹었다. 나같이 정신줄을 놓고 사는 사람에게 운전이란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다. 시동끄고 라이트 끄는 일이 어쩜 그렇게 생각이 안나는지, 고작 반년도 안되는 시간 안에 그렇게 배터리 방전은 다섯차례나 일어났다. 마지막이 출장에서 돌아온 토요일 저녁이었다. 기쁘게 한국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세워놓은 매깅이에게 달려가며 리모콘을 누르는데, 이놈 전혀 깜빡이질 않는다. 불안한 징조였다. 열쇠로 차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니나다를까 라이트를 켜놓은 채로 4일을 주차시켜놨던 거다. 기억이 찬찬히 나기 시작했다. 수요일 이른 아침 출근길 차를 몰고 오는데 옅게 안개가 끼어있었다. 라이트를 켜며 이런 생각도 했다.
'저녁이 아니고 이런 아침에 등을 켜면 시동끄고 라이트 끄는 걸 잊어버리기 쉽상이지~하지만 오늘을 내가 이렇게 한번 더 되새기고 있으니까 주차장에 차 세워놓으면 라이트 먼저 딱 끄는거야~OK!?'
아..정말 나란 인간이 내세울 점은 뭐가 있을까..언제까지 계속될까..라이트 켜고 나오기, 사이드브레이크 걸고 운전하기,,,,
그러고보니 난 아직 내 차번호도 못외워서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걸어놓고 차번호 확인하기 위해 매일 보험증서를 뒤지는라 안내원을 기다리게 두고 허둥지둥이다.
그래도 잘하는 건 하나 있다. 안전벨트매기! 나란 사람 생각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나보다.

3. 출근 길에 늘 초등학교 하나를 지나온다.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주번을 서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지난 주에는 초미소녀가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서있어 나조차 아찔하게 만들더니, 이번 주는 발육이 좋은 키큰 총각같은 남자 어린이가 그 자리에 서서 누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대체 이 초등학교의 정체는 뭘까?!
마침 보행자 파란불 신호가 떨어져 아이들이 한무더기 지나가는데, 깜장콩 같이 작고 귀여운 남자아이가 한손을 번쩍들고 길을 건넌다. 마침 맨 앞줄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라, 그 꼬마의 웃는 얼굴을 정면으로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아~ 어린이의 방긋 웃는 얼굴은 나같이 탁한 사람의 마음을 맑게 변신시켜준다. 나도 모르게 벙긋 따라 웃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4.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드디어 차 앞유리에 사각사각 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예전엔 늘 조수석에 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빠든 엄마든 오빠든 운전하는 사람이 내려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로 박박 긁어 살얼음을 떼어내곤 했는데, 오늘 아침 막상 얼어붙은 유리창을 독대하고 있자니, 아 나도 다컸구나(?)하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차에 못쓰는 카세트 테이프는 없고, 일단 손이 시려워 주유소에서 받은 작업용장갑을 끼고 유리창을 긁을 만한 걸 찾는데, 역시 cd케이스 밖에 없었다. 어느 놈을 집어야 할지 정말 너무나 난감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고, 도저히 맨정신에 어느 한놈을 골라내서 이런 잡일을 부려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하날 집었다.
미안해요, 요요마 아저씨..

오늘을 퇴근하고 못쓰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찾아놔야 겠다. 아님, 종이박스라도 하나 구해 해체시킨 다음 앞유리에 얹어놓기라도 해야지.














